
주변에서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따면 커리어의 판도가 바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30대에 들어서며 이직과 전문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삼정KPMG나 대형 법인에서 근무하는 지인들을 보며, 그들의 전문성이 단순히 자격증에서 오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버텨온 시간에서 오는 건지 헷갈렸죠. 사실, 국제회계사 자격증 하나로 드라마틱한 연봉 상승이나 무조건적인 해외 취업이 보장된다고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실제로 제 지인 중 한 명은 1,500만 원 정도를 들여 베커(Becker)를 포함한 온갖 강의를 결제하고 2년 넘게 매달렸습니다. 그는 합격만 하면 바로 미국 현지 회계법인으로 점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합격 후에도 비자 문제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고, 국내 기업에서조차 영어 실력과 실무 경력을 더 우선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격증을 땄지만, 3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자격증과 실무의 괴리’입니다.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최소 1년에서 1년 반의 시간을 쏟아야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퇴근 후 3~4시간은 기본이죠. 주말도 반납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단순히 강의료 몇백만 원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현업에서 커리어를 쌓거나 다른 실무 역량을 키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재무 전문성이 필수적인 CFO 라인으로 가려는 분들에게는 확실히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한국콜마나 SK바이오팜 같은 기업들이 CFO급 인재를 뽑을 때 회계사 출신을 선호하는 건 이유가 있거든요.
가장 흔한 실수는 ‘자격증이 곧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원가관리회계 지식은 실제 경영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나 유의미합니다. 시험을 위한 지식은 문제 풀이에 특화되어 있을 뿐, 실제 법인에서 수십 페이지의 재무제표와 씨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본 실패 사례 중 대다수는 자격증 취득 후 본인의 가치가 시장에서 즉각적으로 평가받지 못하자 좌절하고 커리어 전체를 방황하는 경우였습니다.
결국 trade-off를 고려해야 합니다. 자격증을 취득해서 전문성을 더할 것인가, 아니면 실무 경력을 다져 직무 전문가가 될 것인가. 저는 전자가 반드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대기업 재무팀에서 실무를 경험하고 있다면, 굳이 고생해서 AICPA를 따지 않아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진입하려는 비전공자라면 이 자격증이 일종의 ‘입장권’이 될 수는 있겠죠.
이 글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 전, 커리어의 전환점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본인만의 실무 도메인이 확고한 분들에게는 시간 낭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지금 막막해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려는 거라면, 일단 서점에 가서 관련 교재를 훑어보고 본인이 그 빡빡한 수치들을 견딜 수 있는지 딱 일주일만 고민해보세요. 그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진다면, 공부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시험 합격이 모든 문제의 정답이 아님을, 실제 현장에서는 자격증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더 자주 언급된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베커 강의를 2년이나 매달렸다는 게 정말 인상적이네요. 제가 비슷한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업무 경험에 투자했더라면 더 좋았을까 싶습니다.
베커 강의 비용 생각하면 정말 부담되네요. 현실적인 조언 감사합니다.